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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_ 오래된 지도 속의 정동

지도의 사전적 의미는 지구 표면의 일부나 전부의 상태를 기호나 문자를 사용하여 실제보다 축소해서 평면상에 나타낸 것입니다. 지도는 그림과 다릅니다. 사물의 위치 표현에서 객관적인 정확성을 지향하고, 위치를 구별하기 위해 지명이 함께 기재되기 때문에 사물의 미(美)나 본질을 주관적으로 해석하는 회화(繪畫)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인간은 사물의 위치 정보를 바탕으로 자아 속에 표상을 구성하고, 일정한 형식을 통해 이를 외적으로 표현합니다. 지도 위에 표현된 지식들은 객관화된 지리 정보로 전환되어, 사회에서 확산됩니다. 오늘날 지도는 토지에 관한 각종 조사연구, 사업계획, 군사, 레크리에이션 등에 널리 이용되어 인간의 모든 생활에 걸친 필수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또한 지도의 정확성 여부는 국가의 경제와 문화수준의 지표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조선 한양 속 정동, 일제 경성 속 정동, 대한민국 서울 속 정동이 지도 속에 표현되어있습니다.

출처 : museum.yonsei.ac.kr

1890년대 수선전도(首善全圖) 속의 현재 정동 지역

출처 : museum.seoul.kr

1892년 수선전도(首善全圖) 한글본 속의 현재 정동 지역

출처 : e-kyujanggak.snu.ac.kr

1900년대 제작된 한성부지도(漢城府地圖) 속의 현재 정동 지역

출처 : museum.seoul.kr

한일병탄 직전인 1907년 일한서방(日韓書房)에서 간행한 1:10,000 지도 속 현재 정동 지역. 원제목은 실측상밀 최신경성전도(實測詳密 最新京城全圖)다. 도성 내의 지명인 방과 동의 명칭은 청계천을 경계로 하여 북쪽은 전통적인 지명을 대개 유지하고 있으나, 남쪽의 남산자락에 위치한 곳의 지명은 명치정·본정 등 일본식으로 거의 바뀌었고, 지명의 표시도 일본어 표기로 대부분 바뀌었다. 이 지도가 제작된 시기는 1905년 을사늑약(乙巳勒約)이 체결된 이후이다.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장악한 일제는 육조거리에 통감부(統監府)를 설치하고 통감을 주재시켜 이른바 보호정치를 시행하면서 조선합병을 더욱 노골화하였는데, 이 지도는 이러한 시기적 상황을 잘 반영해 주고 있다.

출처 : museum.seoul.kr

해방 1년 전 1944년 일제가 제작한 경성안내(京城案內) 속 정동. 지도에는 서대문구 정동정 (貞洞町)으로 표기되었다. 1943년 구제도(區制度)가 실시되었는데 용산출장소를 용산구(龍山區)로, 동부출장소를 분할하여 동대문구(東大門區)와 성동구(城東區)로, 서부출장소를 서대문구(西大門區)로, 영등포출장소를 영등포구(永登浦區)로 하고, 도성 내에 종로구(鐘路區)와 중구(中區)를 각각 신설하여 모두 7개 구(區)를 설치한다. 1945년 일제강점기가 끝날 때까지 정동은 정동이 아니었다. 일제강점기의 경성 서대문구 정동정(貞洞町)에서 서울 서대문구 정동(貞洞)이된 것이다. 그러다 1975년 ‘정동’은 중구 관할이 된다. 정동이 정동이 되기까지에는 긴 세월이 필요했었다.

출처 : museum.seoul.kr

1946년 이후 제작된 '서울안내' 지도. 이 지도에는 당시 행정구역 명칭 변경에 따라 일제강점기 일본식 동 이름인 '정'(町), '정목'(丁目)은 적색으로, 해방 후 한국식 동명인 '동'(洞), '가'(街)는 흑색으로 표시되는 등 해방 전후의 표기 방식이 혼재된 것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