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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_ 오래된 지구촌 정동

정동 외국 공사관의 설치 >>>  

1883년 미국공사관이 설치된 것을 필두로 정동지역에는 서양 각국의 공사관이 건립되었습니다. 영국, 러시아, 프랑스, 독일 등이 정동에 자리를 확보하여 공사관을 건축하였는데, 이중 미국만은 원래의 한옥을 개조하여 사용하였고, 영국, 러시아, 프랑스 등은 본국의 위엄을 드러내기 위하여 장중한 양관을 지었습니다. 이러한 공관을 중심으로 한 양관 건축물들은 정동을 이국적인 분위기로 만들었습니다.

출처 :nationaltrustkorea.org

1902년 캐나다 선교사가 서양에 소개한 서울지도 속 정동. 경운궁과 황단(원구단), 영관(영국 영사관),  미관(미국 영사관),  아관(러시아 영사관),  법관(프랑스 영사관) 등이 그려져 있다

미국 공사관  

출처 : museum.seoul.kr

1882년 조미통상수호조약을 맺은 이후 1883년 푸트(Lucius Harwood Foote)공사 일행은 박동에 있던 묄렌도르프의 집에 잠시 거처하였다가 정동에 있는 민계호의 사저를 구입하여 입주하였다. 미국공사관이 정동으로 이주하면서 이곳에는 다른 외국인 공사관들이 들어올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다. 알렌(H. N. Allen)공사가 재임하던 1900년 전후에는 공사관을 부분적으로 증축하고 내부를 개조하였다. 당시에 쓰던 건물은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처음 조성될 당시의 건물 원형이 부분적으로 남아 있다. 또한 이 공사관 건물은 서울에 세워진 최초의 외국 공사관이라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영국 공사관  

출처 : appenzeller.pcu.ac.kr

영국은 1884년 정동 4번지에 필지를 매입하고, 1890년 5월에 1호 관사를 기공하여 1891년

5월 준공하였다. 당시의 정초석은 지금까지 남아 있는데 이것은 힐리어 공사의 부인에 의해 놓여진 것이다. 이어서 2호관이 1892년 5월에 완공되었다. 영국공사관 주변으로는 성공회 성당인 ‘장림교회’와 성베드로 병원, 수녀원이 들어서고 주로 영국인이 모여 살았다.

영러시아 공사관  

출처 : museum.seoul.kr

러시아는 1884년 조선과 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였는데, 처음에는 한옥을 개조하여 사용하다가 1890년 5월 사바틴의 설계로 새로운 양관을 착공하여 1895년에 완공되었다. 상림원이 있었던 언덕에 위치한 러시아공사관은 서울을 찾는 외국인에게 강한 인상을 주었다. 이곳은 1896년 고종이 아관파천을 단행하여 1년간 거처로 사용하던 곳이기도 하다. 공사관 옆에는 러시아정교회가 들어서기도 하였다.

프랑스 공사관  

출처 : appenzeller.pcu.ac.kr

프랑스공사관은 1895년 살르벨르(M. Salebelle)가 바로크풍으로 설계한 건물로 지하 1층, 지상 2층, 옥탑으로 조성되었다. 그런데 정동 지역에는 프랑스 공사관을 중심으로 하는 프랑스인 집단 거주가 일어나지는 않았다. 프랑스인들은 종현성당이나 약현성당 등과 같이 주로 서학의 순교지 등을 중심으로 성당을 건축하였고, 이로 인해 다른 국가들에 비해 정동에서의 위상은 약하였다고 할 수 있다.

선교・의료・교육기관의 발신지>>>  

 정동에 외국공사관이 들어서자 그 주변으로 각국의 선교・의료・교육기관도 함께 들어섰습니다. 외국인들의 통행이 빈번해지자 정동길과 대한문 주변으로는 외국인의 호텔과 상점들이 줄지어 개업하였습니다. 정동은 외국의 신문물이 유통되는 장소가 되었고, 선교・의료・교육의 중심지로서 대한제국에 서양의 문화와 문물이 유입되고 전파되는 전진기지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정동제일교회  

출처 : chungdong.org

정동제일교회는 아펜젤러가 1887년 상동부근에 개설한 벧엘 예배당(Bethel Chapel)에서 시작되었다. 이후 정동의 시병원이 이전하자 1897년 이 자리에 감리교 예배당 중 최초의 서양식 건물인 정동제일교회가 들어선 것이다.

새문안교회  

출처 : saemoonan.org

새문안교회는 1887년 9월 27일 밤, 정동에 있던 언더우드 사랑방 한옥에서 14명의 한국인과 언더우드 목사, 로스 목사의 첫 예배를 기점으로 교회가 시작되어 한국 최초의 조직 교회로 탄생하였다. 새문안교회는 언더우드 사랑채에서 조직된 이래 그곳에서 8년을 지내다가, 1895년 서대문 안 큰길가에 새문안 교회당을 건립하였다.

성공회성당  

출처 : kyobostory.co.kr

미국인 소유의 초가집에서 코프주교가 첫 미사를 집전한 1890년 12월 21일, 이날이 서울 주교좌 대성당의 모체인 장림성당(將臨聖堂_ The Church of Advent) 즉 지금의 성공회 성당이 시작된 날이었다. 정동에는 한국식 건물을 신축하여 성당으로 활용하였고, 그 옆에 수녀원도 건축하였다.

배재학당  

출처 : appenzeller.pcu.ac.kr

1885년 미국인 선교사 아펜젤러가 개설한 최초의 신식학교로, 처음에는 ‘영어학교’라는 이름으로 통용되었다. 1887년 2월 21일 고종으로부터 배재학당이라는 교명을 하사받아 보다 안정적인 교육사업을 할 수 있었다. 1902년 아펜젤러 사후 하당을 맡게 된 벙커는 배재학당을 ‘Paichai High School’로 명명하였다.

이화학당  

출처 : appenzeller.pcu.ac.kr

1886년 스크랜튼(Mary F. Scranton) 선교사가 설립한 여학교로, 고종은 1887년 2월 21일 배꽃 같이 순결하고 아름다우며 향기로운 열매를 맺으라는 의미로 ‘이화학당’이라는 이름을 짓고 편액을 하사했다. 이후 학생 수의 급격한 증가로 1897년 종래의 한옥교사를 헐고 붉은 벽돌로 2층 양관을 지었다.

손탁호텔  

출처 : museum.seoul.kr

손탁(A. Sontag, 孫澤 1854~1925)은 1885년 러시아공사 베베르를 따라 내한하여 25년간 한국에서 생활하였다. 궁내부에서 외국인 접대업무를 맡으며 고종과 명성왕후와 가깝게 지내게 되었고 1895년 서울 정동의 한옥 한 채를 하사받았다. 이를 기반으로 1898년 양관인 손탁호텔을 지었으며 서양요리와 호텔식 커피숍 경영의 효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