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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_ 정체성 : 작고, 독립적이며, 전통적인?

크래프트 맥주(Craft Beer)란 무엇인가? >>>  

크래프트 맥주란 무엇인가? (손으로 만드는) 수제맥주? 작은 양조장에서 만든 맥주? 개성 있는 맥주? 다국적 맥주 공룡과 싸우는 개미들의 맥주? 단순한 질문 같지만 답하기 쉽지않다. 이 질문 속에는 복잡한 맥주의 역사가 연동되어 있기 때문이다. 크래프트 맥주의 경제적 정의와 문화적 정의 그리고 사회적 정의를 관통하는 답은 단순하지 않다.

 

우선 ‘크래프트 맥주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미국 양조협회(Brewer’s Association)의 정의에서 확인해 보자. ‘작고(small) 독립적이며(independent) 그리고 전통적인(traditional) 맥주 혹은 양조방식’이 협회의 공식적인 답이다.

출처 : brewersassociation.org

미국 양조협회(BA)의 로고. 협회는 1942년 소규모 양조 위원회(The Small Brewers Committee)로 출발해 2018년 현재 4,400개의 회원이 가입해 있다. 또한 협회는 46,000명이 회원으로 있는 미국 홈브루어 협회(the American Homebrewers Association)와 연대하고 있다.

첫 번째 정의인 ‘작은(small) 양조장’이란 ‘연간 생산량 6백만 배럴(7억 리터) 이하의 규모’를 말한다. (한국 하이트 맥주의 2017년 총 생산량이 6억 6천만 리터라고 하니 실로 어마어마한 양이다.) 두 번째, ‘독립적인(independent) 양조장’이란 공룡양조장 등 외부 자본 비율이 25% 미만으로 구성될 것을 주문한다. 세 번째, 전통적(traditional)이란 의미는 ‘몰트와 홉의’의 전통을 가리킨다. 원칙적으로 맥주는 몰트와 홉으로 만들어야 하나 독특한 맥주 제조를 위해 때로는 흥미로운 재료나 비전통적인 재료를 첨가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출처 : beerpulse.com

미국 양조협회(BA)는 2017년 6월 크래프트 맥주와 그렇지 못한 맥주를 구분하는 인증마크 제도를 선포했다. 협회의 인증마크를 사용할 수 있는 양조장은 협회의 크래프트 맥주에 대한 정의를 충족시키는 양조장이다. 개미처럼 작고(small) 독립적(independent)이며 동시에 전통적(traditional)인 ‘크래프트 맥주 양조장’들과 크고 둔한 ‘맥주공룡’들과의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2016년 현재 미국에는 5,301개의 양조장이 있다. 이들이 판매하는 맥주는 무려 2조 5000억 원 규모이며 맥주시장의 12.3%를 차지하고 있다.

협회가 설명하는 크래프트 맥주에 대한 정의가 간명하고 정량적임에도 불구하고 ‘크래프트 맥주’를 이해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크래프트 맥주란 ‘크래프트(craft)’라는 미학용어와 ‘맥주(beer)’의 합성어이다. 우선 ‘크래프트’라는 미학용어를 통해 우리가 그동안 마셔온 맥주와 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렇다고 크래프트 맥주가 특별하고 귀한 아트 맥주(art beer)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또한 특정하게 기획된 디자인 맥주(design beer)도 아니다. 취미 활동을 넘어서 판매 가능한 홈비어(homemade beer)도 아니고, 기계 대신 손으로 정성껏 빚은 수제맥주(handmade beer)를 의미하지도 않는다. 레스토랑 셰프가 선택한 하우스비어(house beer)도 아니며 가양주(家釀酒)도 아니다. 그렇다면 ‘크래프트 맥주(craft beer)란 무엇인가?'

 

‘공예’의 국어 사전적 정의는 ‘물건을 만드는 기술에 관한 재주’이다. 옥스포드 영어 사전에 의하면 ‘craft’란 ‘손으로 물건을 만드는 기술과 관련된 활동(An activity involving skill in making things by hand.)’이다. 이런 사전적 정의를 적용하자면 ‘Craft Beer’를 ‘수제맥주’로 옮기는 것이 적절하다. 그러나 이러한 사전적 정의는 현상의 맥락을 이해하기에 부족하고 그 함의를 축소하거나 왜곡할 가능성이 높다.

사실 ‘크래프트’라는 미학용어는 18세기 말 산업혁명과 연동된 미학철학 그리고 근대 사회경제학을 반영하며, 당연히 ‘Craft Beer’의 ‘Craft’ 역시 그러한 시대정신을 반영하고 있다. ‘크래프트 맥주란 무엇인가?’를 이해하기 위해 우선 ‘크래프트(craft, 공예, 工藝)란 무엇인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산업혁명과 공예의 죽음 >>>  

18세기 산업혁명 속에는 희망과 절망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숨어 있었다. 산업혁명이란 18세기 영국에서 기계(machine)의 등장으로 인하여 생긴 사회경제 구조상의 변혁을 말한다. 기계가 등장하면서 종래의 수공업적 소규모 생산으로부터 대량생산의 공장제 기계공업으로 전환된 산업상의 일대 변혁이 일어났다. 산업혁명은 영국이 제일 먼저, 그리고 가장 철저히 경험하였고, 차츰 세계 각국으로 퍼져 나갔다. 이러한 산업혁명을 거쳐 비로소 자본주의 체제가 확립되었다.

 

산업혁명에 따라 농업 사회에서 공업 사회로 전환되면서 많은 노동자들이 한꺼번에 도시로 몰려들었다. 또한 경제와 산업 분야에서는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했지만, 과잉생산에 의한 인플레이션 공포가 만연했고, 열악한 생활환경과 공해와 같은 심각한 사회 문제가 야기되었다. 산업혁명의 ‘빛’이 풍요와 물질의 민주화라면 ‘그림자’는 소외된 노동, 지속불가능한 지구 생태계, 자본의 욕망, 세속적 문화, 팍팍한 일상 등이다.

출처 : newsela.com

1887년 영국 콘웰(cornwall)의 구리 제련 공장의 매연.

19세기 말의 빅토리아 시대(1837-1901)의 영국은 2차 산업혁명(1865-1900)이라는 홍역을 앓고 있었다. 산업혁명의 희망과 절망은 사회, 경제, 문화 속에서 교차되고 있었다. 사람의 일자리를 빼앗는 기계와 그런 기계를 파괴하는 러다이트운동(luddite movement). 자유경쟁으로 인한 부익부 빈익빈 현상. 자본주의 문화로 인해 척박해지는 문화예술 등 세기말적 절망이 공기 속에 녹아 있었다. 일상 속 물질의 삶은 풍요해지고 있었으나 동시에 정신의 일상은 척박해지고 있었다.

 

미술공예운동(art & crafts movement)의 시작은 이러한 조건 속에서 필연이었다. 영국의 미술공예운동은 산업혁명의 결과인 사회, 문화, 경제 구조에 대한 문제제기로부터 시작한다. 미술공예운동 이후 영어 ‘craft’의 의미는 단순한 ‘공예’를 넘어 입장과 태도(position & attitude)를 내포한 명확한 철학적 개념으로 승화된다. 사실 산업사회와 자본주의의 등장은 인간과 사물의 분리과정이었다. 노예였던 기계가 인간의 주인이 되었다. 사물은 자원으로 변했다. 인간이 사물을 만들었지만 자본주의 시대가 되면서 인간이 그 사물을 숭배하고 이제는 그 사물이 인간에게 폭력을 가하는 시대가 되었다. 장인과 장인의 노동은 도태되거나 착취당한다.

출처 : autrecarnetdejimidi.wordpress.com

1851년 영국 런던 하이드 파크 공원에서 열린 만국박람회(The Great Exhibition). 산업혁명, 자본주의, 산업사회, 대량생산, 대량소비 등 20세기 물질문명의 풍요와 척박함, 빛과 그림자, 희망과 절망, 대중성과 조악함을 동시에 보여 준 역사적 이벤트였다.

미술공예운동은 조악한 물질의 대량생산, 인간의 손을 대신하는 기계, 채워지지 않는 자본의 욕망 대신 ‘사람중심의 사회’를 상상했다. 마치 르네상스가 새로운 문화 유토피아를 꿈꾸며 그리스로마의 복원과 부흥을 상상했듯이 19세기 미술공예운동은 미술과 공예가 온전했던 르네상스의 회복과 발흥을 꿈꾸었던 것이다. 소박하고 작고, 느리고 약하지만 사람이 세상의 중심이 되는 사회 그리고 장인과 공예의 부활을 상상했다.

 

크래프트, craft, 공예, 工藝의 역사 >>>  

미술공예운동은 산업혁명과 자본주의가 가져온 공룡기업의 분업과 착취에 대한 저항, 그리고 자본주의의 대량생산품의 단조로움에 대한 소비자의 저항까지를 포괄하는 근대 최초의 문화운동이었다. 미술공예운동의 실천은 ‘장인과 공예’의 부활이었으며, 이러한 부활은 곧 산업사회에 대한 거부와 르네상스적 인간성의 회복을 상징하는 실천방식이었다.

출처 : ashmolean.org

존 러스킨(John Ruskin, 1819 - 1900). 화려한 예술비평가의 길과 험난한 사회사상가의 길을 차례로 걸었던 19세기 영국의 지식인이다.

미술공예운동에 철학적 자양분을 공급한 사람은 존 러스킨(John Ruskin)이다. 러스킨의 사상은 “사물은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져야 한다.”는 상징적이며 철학적인 주장이 대변한다. ‘손으로 만드는 것’이 ‘인간의 감성과 노동을 가장 잘 반영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또한 ‘창작성’을 강조하였는데, 당시 산업 생산품이 예술가를 소외시키기 때문에 예술가들의 창작활동에 의해 생산되는 물건의 가치가 하락한다고 생각하였다. 더 나아가 그는 예술은 인간의 기쁨과 행복을 반영해야 하고 이를 위해 자연적인 형태와 재료가 적합하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존 러스킨은 인간의 노동이 없는 물건은 무가치한 것으로 여겼기 때문에, 이러한 노동을 하지 않는 부르주아에 대해 강력히 비판하였다. 그는 산업사회와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중세 예술가 장인들의 조직인 길드(guild) 조직을 생각했다. 건축가, 공예가, 미술가 등 예술가 장인들이 서로 협력해 이루는 르네상스 문화 복원을 생각했다. 존 러스킨은 이러한 중세의 길드 조직을 모델로 하여 자신의 길드 조직인 세인트 조지(St. George)를 1871년에 설립하여 그의 생각을 구현하고자 했다.

출처 : neilsinden.wordpress.com

러스킨의 땅(ruskin’s land)으로 불리는 영국 쉐필드(Sheffield)의 세인트 조지 길드(guild of St. George). 현재 기념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존 러스킨이 미술공예운동의 철학적 근거를 세웠다면 미학적 근거는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가 만들었다. 윌리엄 모리스는 존 러스킨의 사상에 접하면서 영국이 직면한 사회적인 문제에 ‘공예’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생각했다. 참다운 노동은 반드시 즐거움이 동반되는 것이어야만 하고 그런 자발적이고 즐거운 노동의 시대가 중세라고 생각한 것이다.

 

모리스는 19세기 영국의 산업자본주의와 대영제국주의 체제를 반대하면서 ‘공예의 가치란 인간의 생명과 생활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무엇보다도 인간의 표현 행위인 자연스러운 생활예술을 꽃피우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를 이룩하기 위해 평생을 싸웠다. 산업자본주의 속에서 노동은 고통의 상징이 되었지만, 노동이 즐거움이 되고 예술행위가 될 수 있다면 인간의 삶은 보다 아름답고 이상적으로 변할 것이라 생각했다. 이것이 바로 ‘공예’에 대한 모리스의 기본 신념이다.

출처 : martineclaessens.com

윌리엄 모리스(1834 - 1896)와 그가 직접 디자인한 꽃 문양의 벽지. 19세기에 일상과 함께 하는 공예를 주창하며 미술공예운동(Arts and Crafts Movement)을 주도했다.

모리스가 생각했던 유토피아 사회의 기초는 자유로운 노동과 예술적인 삶이었다. 그는 노동이 개인의 자유의지에 따라 이루어지는 창조적인 행위이지 결코 고통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또한 예술이 특정 계급의 계급적 이해를 반영하는 도구로 전락하거나 예술가들만의 전유물이 되어서는 안 되며, 모든 사람의 일상 속에서 보편화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모리스가 미술(art) 보다 공예(craft)를 강조하는 이유이다. 모리스는 1861년 "모든 생활용품을 예술가의 손으로 아름답게 만들어 저렴하게 판매하겠다."는 취지로 모리스, 마셜, 포크 회사(Morris, Marshall, Faulkner & Co.)를 설립하고, 벽화ㆍ벽지ㆍ장식ㆍ스테인글라스ㆍ조각ㆍ자수ㆍ가구 등 많은 공예품을 만들었다.

 

위에서 살펴본 바에 동의한다면 ‘craft’를 단순히 ‘(수)공예’로 번역할 수 없을 것이다. ‘craft’라는 용어에는 20세기 역사에 대한 처절한 반성과 실천 강령이 담겨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크래프트 맥주(craft beer)의 크래프트(craft)를 사전적 의미 그대로 ‘물건을 만드는 기술에 관한 재주’로 해석할 수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해 크래프트 맥주는 손재주 좋은 사람이 만든 예술로서의 맥주가 아니라는 것이다.

출처 : brewdog.com

크래프트 맥주 혁명 광고 포스터.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혹은 공룡과 개미의 싸움과 같은 미국의 크래프트 맥주 현상과 19세기 미술공예운동이 교차된다. 실제로 크래프트 맥주는 대단히 철학적인 반동과 문화적인 활동의 결과이다. 19세기 미술공예운동이 고심했던 산업사회, 대량생산, 거대자본, 노동소외 등에 대해 크래프트 맥주 역시 분명하게 거리를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