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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_ 타율의 맥주와 자율의 맥주

독과 약, 천사의 미소와 악마의 눈물 >>>  

술의 사전적 정의는 ‘알코올이 함유되어 있어 마시면 취하게 되는 음료의 총칭’이다. 취하게 만드는 요소인 술의 주성분은 에틸알코올(C2H6O)이다. 법은 에틸알코올 함량의 최저한도로 술과 다른 음료를 구별한다. 한국의 ‘주세법’에서는 알코올 1% 이상의 음료를 술이라고 말한다. 알코올 1% 이하는 술이 아니다. 술에 대한 사전적 정의는 언제나 명료하고 ‘쿨’하다. 그러나 술의 문화경제, 사회정치는 그렇지 못하다.

출처 : renegadetribune.com

술을 마시는 인간들은 양처럼 순해지며, 사자처럼 사나워지고, 원숭이처럼 춤추며, 돼지처럼 더러워지는 축복과 저주를 받는다.

스님들은 술을 곡차(穀茶), 반야탕(般若湯), 지수(智水)라 완곡하게 이르거나 미혼탕(迷魂湯), 화천(禍泉)이라 하여 경계한다. 술을 술이라 부르지 못하고, 스스럼없이 마시지 못하는 문학적 고뇌가 깔려 있다. 인류의 조상 아담이 빚은 술 맛에 반한 나쁜 악마. 그 악마는 포도밭에 양, 사자, 원숭이, 돼지를 죽여 그 피를 거름으로 준다. 그래서인지 술을 마시는 인간들은 양처럼 순해지며, 사자처럼 사나워지고, 원숭이처럼 춤추며, 돼지처럼 더러워지는 축복과 저주를 받는다. 유대인의 경전 『탈무드』 속 술 이야기다.  

 

술 이야기는 끝이 없다. ‘술’을 접해 보지 못했던 미국 원주민 인디언들은 백인들이 권한 술을 마시고 ‘불-물(fire water)’이라 부르며 놀라워한다. 인디언들은 이제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그 ‘물-불’을 마시고 있다. 천사의 미소, 악마의 눈물처럼 묘사되는 술. 약(藥)과 독(毒)인 술. 어리석은 사람들을 위해 통치자들은 악마의 눈물인 술, 독과 같은 술의 손쉬운 접근을 차단한다. ‘금주령’이다. 그러나 단 한 번도 성공한 금주령은 없다. 사람들은 숨어서 술을 만들고 숨어서 술을 마신다. 그러자 위정자들은 ‘술’에 엄청난 죄악세(罪惡稅, sin tax)를 물린다. 술의 사회학에 술의 경제학을 칵테일한다. “용서할 테니 세금 내고 마셔라!”라는 지배자의 입장은 이들과 피지배자들이 합의한 술의 조정과 통제, 운영과 관련한 오랜 방식이다.

 

금주법 : 자율과 타율의 경계 >>>  

현대 국가 체제 속에서 술을 멀리하거나 끊는 행위인 ‘금주’는 종교와 도덕 혹은 윤리와 철학의 영역이었다. 특히 청교도적 전통이 강한 미국에서의 술이란 악마의 눈물이자 독의 상징이었기 때문에 굳이 법으로 규율하지 않아도 조정, 통제가 가능했다. 사실 술을 법으로 금지하는 것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로 상징되는 ‘근대국가(modern state)’에서는 수치스럽고 부적절한 통치방식이다.

 

미국은 20세기를 금주운동과 함께 시작한다. 개신교 세력인 금주 십자군(Dry Crusaders)과 대담한 행동주의자들로 구성된 금주로비단체인 안티살롱동맹(Anti-Saloon League) 등 다양하고 적극적인 금주운동은 20세기 초반 죄악시되었던 ‘음주문화’의 단면이다.

출처 : mstartzman.pbworks.com

1874년에 결성된 여성기독교금주연맹(Women's Christian Temperance Union). 20세기 초반 이들 금주운동의 배경철학은 완벽한 금주(temperance)로 ‘술’ 없는 세상을 꿈꾸는 것이다. ‘술 마신 입술로의 키스를 금한다.’라는 슬로건이 이채롭다.

이러한 문화환경 속에서 미국 금주법인 볼스티드 법(Volstead Act)은 1917년 8월 1일에 제출되어 1919년에 상원을 통과한다. 당시 민주당의 윌슨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한다. 그러나 다수 공화당원에 점령된 상원에 의해 법안은 다시 상정되며 원안대로 통과되어 시행되었다. 볼스티드 법에 의해 알코올을 0.5% 이상 포함하면 술이며 그런 술을 생산, 수입, 운송의 주체는 법에 의해 처벌당하게 된다.

 

금주법 : 타율의 억압  >>>  

미국의 금주운동과 금주법의 근본적인 배경은 19세기 미국의 청교도(Puritan) 전통과 금욕의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 청교도는 로마가톨릭의 제도와 의식(儀式)을 거부했다. 동시에 엄격한 도덕, 주일(主日)인 일요일의 신성화와 엄수, 향락의 제한을 미덕으로 간주했으며 이런 청교도 정신이 곧 미국의 정신적인 가치로 자리잡았다. 이런 문화 속에서 악마의 눈물이자 백해무익한 술은 저주와 금지의 대상이며 당연히 법으로 통제해야 할 ‘나쁜 것’이다.

출처 : chert-poberi.ru

1920년 금주법인 볼스티드 법이 통과되자 버려지는 맥주.  

한편으로는 미국의 금주법 시행 배경에는 산업화에 의한 도시와 농촌의 갈등, 이민문제, 제1차 세계대전과 독일 이주자에 대한 견제와 억압 등 다양한 문화충돌과 다층적인 사회경제학이 반영되어 있다. 보수적인 정치인과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에게 새로운 이민자들은 미국 청교도 정신을 훼손하는 불경한 사람들로 간주된다.

 

특히 ‘음주 가무’에 관대한 기독교 계통의 이탈리아, 아일랜드 이민자들은 도시의 악으로 치부되곤 했다. 음주와 범죄, 음주와 성적개방 등 도시화 산업화의 구조적 문제들을 음주문화의 영향으로 결론지었다. 미국과 미국의 청교도 정신을 지키기 위해 금주법은 꼭 필요한 것이 되었다. 불경한 비주류의 사람들을 조정, 통제, 관리하기 위한 법이 필요했던 것이다.

출처 : interactive.wttw.com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계 양조장 주인들을 처형하는 삽화. 이런 독일계 이민자를 향한 증오와 연동하여 알코올 0.5% 이상 주류의 제조, 유통, 판매. 곧 맥주의 금지를 의미하는 법을 탄생시켰다는 이론이 있다.

1917년 4월 6일 미국은 제1차 세계대전 참전을 선언하며 4월 10일 ‘식량통제에 대한 법률’을 통과시킨다. 이어서 위스키 등 증류주의 제조를 중단시키고 맥주의 알코올 도수는 2.75%까지 낮추도록 한다. 당시 독일 이민자들의 상당수가 맥주 양조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1919년 볼스티드 법에 의해 알코올 0.5% 이상의 술은 제조와 유통이 금지된다.

 

사실 전통적으로 독일 이민자들에게 맥주란 음료에 가까운 것이다. 당시 시판되었던 맥주의 알코올 성분은 보통 3% 내외를 유지했다. 알코올 0.5% 이상을 술로 규정하여 법률로 금지하는 것은 독일에 대한 간접적인 증오, 독일을 상징하는 맥주와 독일 이민자에 대한 탄압이라는 혐의가 있다.

 

문샤인 Moonshine : 밀주 >>>  

술을 법으로 다스리겠다는 발상은 성공할 수 없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빌 브라이슨(William McGuire Bryson)은 “역사상 이보다 더 기만적인 법도, 이보다 더 위선적인 법도 없었다고 말했으며 실제로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많은 술을 마셨다.”고 비난했다. 금지된 것에 대한 갈망은 자연스런 인간의 심성이다.

 

미국은 유럽의 이민자들로 구성된 나라이다. 유럽의 술 문화는 물 대신 마시는 음료로 간주되며 식사에 곁들이는 음식에 가깝다. 음료와 음식을 법으로 금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특히 물처럼 맥주를 마시는 독일 이민자들, 술 없는 천국보다 술 있는 지옥을 선택하는 프랑스와 이태리 이민자들, 술로 추위를 이기는 북유럽 이민자들에게 금주법이란 목마름이자, 수형(受刑)이자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문샤인(Moonshine)이라는 예쁜 이름의 밀주가 만들어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출처 : sharetngov.tnsosfiles.com

미국 금주령 시대 문샤인 제조장에 대한 경찰의 법집행. ‘법은 인간에게 일정한 행위를 하거나 하지 말도록 요구하는데 그 요구의 기준을 규범이라고 한다. 법은 그 위반의 경우에 타율적, 물리적 강제를 통하여 원하는 상태와 결과를 실현하는 강제규범이다.’(두산백과).

사실 금주법 폐지 여론 형성과 운동은 금주법 시행과 동시에 시작된다. 운동의 중심에는 1918년 결성된 AAPA(Association Against the Prohibition Amendment)가 있었다. 이들은 ‘자유주의를 표방하는 미국에서 술을 금하는 것은, 결국 개인의 자유를 침탈하는 행위’라고 주장하며 금주법이란 개인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하는 법이라고 강조했다.

출처 : 6sqft.com

1932년 미국 금주법에 저항하는 뉴욕 시민들의 거리행진

특히 정확한 여론 조사로 정평이 나있던 ‘문학 다이제스트(Literary Digest)’의 조사 결과는 충격이었다. 1922년 ‘문학 다이제스트’가 72만 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던 여론 조사에서, 60%가 금주법이 민주주의와 자유주의를 훼손시키는 것으로 응답했다. 금주법을 옹호하는 공화당 세력은 당황하기 시작한다. 민주당의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금주법 폐지를 제1공약으로 내세웠고 AAPA는 민주당을 지지한다. 결국 1932년 민주당의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당선되고 13년 간의 금주법은 폐지된다.

 

포스트 금주령 : 르네상스! 혁명! 위대한 시대! >>>  

금주령이 폐지된 1932년. 맥주의 봄은 오지 않았다. 물론 미국인들은 다시 맥주를 생산하고 유통, 수입, 판매할 수 있었지만 ‘크래프트 맥주의 르네상스!’, ‘크래프트 맥주 혁명!’, ‘위대한 크래프트 맥주의 시대!’라 할만한 변화와 동향은 없었다. 미국의 양조장 숫자가 1873년의 4,131개와 똑같은 수치를 기록한 것은 2015년이다.

출처 : vinepair.com

1978년 미국의 홈 브로잉(Home Brewing) 합법화는 크래프트 맥주 활성화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1935년 술에 대한 새로운 법이 제정된다. 포도주 등 과실주는 가정에서 만들어 마실 수 있도록 합법화되지만 맥주는 규모에 관계없이 불법이 된다. 물론 적정규모의 상업양조는 합법화된다. 버드와이저(Budweiser), 밀러(Miller), 쿠어스(Coors)가 시장을 독점하며 승승장구하는 새로운 환경이 구축된 것이다.

출처 : brewersjournal.info

2017년 기준, 각국의 크래프트 맥주 양조장 수. 절대 수치는 미국이 높지만 인구대비로는 영국이 많다. 각국 크래프트 맥주의 문화적 정체성은 창조계급(Creative Class)의 그것과 공유하나 영국의 ‘에일(Ale)의 정통성과 자존심 회복’, 독일의 ‘맥주 순수령’ 해제, 이태리의 ‘와인을 넘어’ 등 크래프트 맥주의 문화적 다양성을 만들어내고 있다. 

금주령 시대와 마찬가지로 홈 브루잉(Home Brewing)은 1978년까지 약 60년 동안 법으로 금지된다. 그러나 1978년 지미 카터 대통령은 1년에 200갤론(750리터) 이하의 홈 브루잉을 합법화한다. 한 번의 사회적 금지, 다른 한 번의 경제적 금지를 넘어서 크래프트 맥주의 르네상스가 시작된 것이다.

 

‘크래프트 맥주의 르네상스!’, ‘크래프트 맥주 혁명!’, ‘위대한 크래프트 맥주의 시대!’

근래 미국 크래프트 맥주 문화와 그와 관련한 경제 동향을 자랑하는 구호들이다. 미국 양조협회(US Brewers Association)에 따르면 2016년 기준 미국 내 크래프트 맥주 양조장은 5,301개에 달한다. 2006년만 해도 1,460개였는데 10년 동안 무려 263%가 증가했다. 악명 높았던 1920년대 금주령 이전, 1873년 4,131개의 양조장 규모를 기록한 후 최고치를 보여 준다. 미국 양조협회에 따르면 크래프트 맥주가 미국 국가경제에 기여하는 규모도 한 해 680억 달러(약 73조 6,000억 원)에 달한다. 르네상스! 혁명! 위대한 시대! 등 ‘역사적인 수사학’이 어색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