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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_ 영국 에일 전통에서 크래프트 맥주까지

영국의 에일 이야기 >>>  

15세기 이전, 영국에는 홉을 첨가한 곡주(穀酒)가 없었다. 영국에는 ‘홉’ 대신 ‘구르트(gruit)’를 첨가한 에일(ale)이 있었다. 구르트는 홉이 보편화되기 이전 맥주에 첨가했던 혼합 향신료이다. 그루트는 생강, 쑥, 서양가새풀, 긴병꽃풀, 박하, 계피 등 다양한 허브를 활용해서 만든다. 15세기까지 맥주(beer)와 에일(ale)은 완벽하게 구분되는 다른 종류의 술이었다. 구르트가 첨가된 곡주는 에일로, 홉이 첨가된 곡주는 맥주로 불리면서 영국의 비전통적인 곡주로 치부되었다.

출처 : beaus.ca

그루트 제조에 사용되는 향신료. 그루트는 홉의 대중화 전에 곡주에 향을 더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허브의 혼합물이다. 중세 영국에서 에일(ale)이란 그루트를 사용한 곡주를 의미한다.

영국의 에일 전통은 강제된 측면이 있다. 당시 그루트의 제조, 판매, 유통은 지역의 영주와 대주교가 독점하고 있었다. 그루트가 첨가되어야만 에일이 되었고 그렇지 못한 곡주는 에일이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유럽의 양조권이 수도원에 귀속, 독점된 것이 권력과 종교의 합작인 것처럼 영국의 구르트 독점 역시 마찬가지였다. 독점은 언제나 저항을 유발한다. 원시 곡주의 흔적인 구르트를 첨가해야 ‘에일’이라 할 수 있었던 부조리에 저항이 따랐다.   

 

중세 영국인들은 홉이 들어간 상큼한 맥주 맛에 열광했고 양조장은 홉의 부패방지 효과에 열광했다. 15세기경 유럽 대륙으로부터 홉 묘목이 들어와 재배되기 시작하였고, 16세기 초에는 켄트(Kent) 주가 홉의 명산지로 자리 잡게 된다. 맥주의 탄생은 BC 3,0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맥주에 홉이 첨가되기 시작한 것은 한참 뒤의 일로, 11세기 말에 가서야 시작된다. 영국에서 홉의 사용이 유럽 대륙보다 500여 년이 지연된 것은 강제된 그루트 에일의 전통 때문이다.

출처 : beaus.ca

캐나다 크래프트 맥주인 그루트 에일. 영국 그루트 에일의 전통은 동시대 크래프트 맥주의 상상을 자극한다. 홉 대신 다양한 향신료로 맥주를 빚는 ‘자유’는 크래프트 맥주의 시대정신이기 때문이다.

17세기 말이 되면서 홉을 첨가하지 않은 에일은 거의 자취를 감추게 된다. 대신 ‘페일 에일(pale ale)’이 영국맥주를 대표하게 된다. 페일은 옅은 색이라는 뜻이지만 오늘날의 호박색 맥주와는 차이가 있다. 전통적으로 영국맥주의 주류를 흑맥주가 차지하다보니 흑맥주보다 색이 밝다는 의미로 쓰였으나 실제로는 갈색에 가까웠다.

 

IPA 탄생과 에일의 종말 >>>  

21세기 크래프트 맥주는 영국의 ‘페일 에일’에서 영감을 얻었고 특히 IPA(India pale ale)는 크래프트 맥주의 맛과 향을 대표할 정도로 상징적이다. 1760년대 영국은 인도를 식민지화했고 식민지 영국인들을 위해 본토에서 페일 에일을 배로 실어 인도로 수출하게 되었다. 그러나 적도를 거치는 가혹한 기후에 대부분의 맥주가 부패되었다. 따라서 영국 양조사들은 방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알코올 도수를 높이고 홉을 다량 첨가한 스트롱 비어(strong beer)를 제조해 인도로 수출하기 시작했다. 특히 양조사 호지슨(george hodgson)은 인도용 특제 맥주를 ‘인디아 페일 에일(India pale ale)’이라 하였고 줄여서 IPA라 불렀다. 호지슨의 IPA는 1800년대 초반까지 아시아 시장을 독점하고 있었다.

출처 : thedrinkingpartners.com

영국에서 인도까지의 먼 항해를 위해 페일 에일을 강하고 독하게 만든 맥주를 IPA라고 불렀다.

영국의 전통인 에일은 다양한 맛과 향을 자랑하며 유럽의 부러움을 산다. 18세기 이전, 에일은 수많은 작은 양조장에서 모두 다른 맛을 내어 사람들을 만족시켰다. 산업화 이전의 과학기술적 한계 때문이지만 이는 다품종 소량생산에서 기인하는 풍부한 특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계화, 규격화, 전문화를 통한 맥주의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메커니즘은 다양함과 풍부함의 자유와 행복을 뺏는 결과를 만들었다.   

 

18세기 영국의 산업혁명은 영국 에일을 몰락시킨다. 에일의 짙고 다양한 향과 깊고 진한 맛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영국의 제임스 와트가 발명한 증기기관은 맥주 양조에도 혁신을 가져왔다. 물의 운송과 관리에서부터 맥아의 분쇄 등에 동력이 이용됨으로써 맥주의 대량 생산을 위한 기반이 마련되었다. 증기기관차의 출현은 맥주처럼 무게가 많이 나가는 상품의 운반 비용을 줄였다. 맥주의 대량 생산과 소비의 토대가 마련된다.

출처 : collection.sciencemuseum.org.uk

산업혁명과 함께 공장화되기 시작하는 1890년대 영국 런던의 양조장 풍경

산업혁명과 함께 사라진 에일의 몰락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우선, 에일은 만들기 어렵다. 당시 에일은 양조 성공률이 약 80% 정도였고 나머지는 맛이 나빠지거나 빛깔이 변하는 산패(酸敗, rancidity) 현상 때문에 폐기해야 했다. 에일은 상온에서 발효시키는 상면발효(上面醱酵, top fermentation)의 술이기 때문에 유해균에 오염되어 부패하는 일이 종종 발생하였다.

출처 : partizanbrewing.blogspot.kr

부두 노동자 짐꾼(porter)을 위한 값싼 술이라는 ‘포터’와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처음으로 대량생산된 술인 기네스의 ‘스타우트’는 모두 상면발효 방식의 에일이다. 19세기, 포터와 스타우트는 ‘페일 에일’을 영국에서 몰아냈는데 그 이유는 실패 없이, 쉽게, 대량 양조가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미생물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던 당시의 양조 설비와 기술로는 잡균 혼입에 의한 산패를 해결할 수 없었다. 유해균 감염은 여름철에 더욱 기승을 부려 산패한 맥주는 모두 폐기되었고 양조장 역시 도산하는 경우가 즐비하였다. 에일의 향이 강하고 색이 짙은 이유는  산패 방지를 위한 홉 등 다양한 첨가물 때문이기도 하다. 마치 열대의 음식들에 강한 향신료를 첨가하는 이유와 같다. 우리나라의 남도 음식문화와도 같은 맥락이다. 영국의 검은 색 에일인 포터(porter)와 스타우트(stout)의 탄생도 빚기 어려운 에일의 한계를 넘기 위한 또 다른 시도였을 것이다.

 

에일과 라거 : 효모의 차이 >>>  

영국의 에일이든 유럽대륙의 맥주이든 중세의 맥주는 상온에서 빚는 상면발효 방식으로 제조되었다. 이때의 맥주는 투명한 황금색의 시원하고 상쾌한 맛의 술이 아닌 불투명하며 다양한 향과 깊고 진한 맛을 지닌 것이었다. 투명한 황금빛 맥주는 하면발효(下面醱酵 bottom fermenting) 방식으로 빚은 라거(lager)라 불리는 현대맥주(modern beer)이다. 라거의 탄생은 에일의 몰락을 예고한다.

출처 : punchdrink.com

라거의 미덕 중 하나는 황금빛의 투명함, 은은한 맛과 향이지만 최고의 미덕은 대량생산이다. 이 때문에 누구나 마실 수 있는 맥주 민주화(!)에 기여하였다.  

15세기 남부독일 바이에른 양조업자들은 추운 겨울에 저온에서 장시간 발효시키고 숙성시키면 특별한 맥주가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이들은 산에 굴을 판 다음 강에서 잘라 온 얼음을 채워 저장실을 만들어 맥주를 보관하면 여름을 넘기도록 산패하지 않고 잘 보관된다는 사실도 발견한다.

 

이렇게 빚은 맥주는 맛이 좋았을 뿐 아니라 상온에서 발효시켜 산패하기 쉬운 상면발효 방식에서는 상상을 할 수 없는 높은 양조 성공률을 보였다. 양조업자들은 양조장 자체를 저온 저장고로 설계하여 운영하기도 하였다. 예를 들면 2층에는 강에서 가져온 얼음을 가득 채우고 1층에는 발효실, 지하실에는 저장고를 두어 저온에서 장기간 숙성시키기 위한 시설로 발전시킨 것이다. 투명하고 맑은 하면발효 맥주인 라거가 탄생한 것이다.

출처 : guadoalmelo.it

현미경으로 본 상면발효 효모인 사카로마이세스 세레비지에(saccharomyces cerevisiae). 효모는 당을 먹고 알코올을 부산물로 배출한다.

술은 당을 발효시켜 얻는다. 다양한 발효방식과 다양한 효모(yeast)로 인해 다양한 술이 만들어진다. 사실 에일과 라거의 차이는 발효방식의 차이이며 발효균, 곧 효모의 차이이다. 에일은 발효 중 탄산가스와 함께 표면으로 떠오르는 효모로 발효시킨 술이다. 에일은 발효액의 표면에 뜨는 성질이 있는 사카로마이세스 세레비지에(saccharomyces cerevisiae)라는 효모로 발효시킨 맥주이다. 이 효모는 10도에서 25도 사이의 상온에서 발효하며 색이 짙고 강하고 풍부한 맛을 지니며 알코올 도수도 높은 편이다.

 

하면발효 맥주인 라거는 발효 과정이나 발효가 끝났을 때 가라앉는 성질이 있는 사카로마이세스 카를스베르겐시스(saccharo-myces carlsbergensis)라는 효모로 발효시킨다. 10도 정도의 저온에서 발효를 하고, 여과가 쉬우며 깨끗하고 부드러운 맛과 향이 특징이다.

 

하면발효의 시작은 뮌헨의 바이엔슈판텐(weihenstephan) 양조장에서 시작되며 1845년 덴마크의 칼스버그(carlsberg) 양조장에서 크게 발전하고 현대맥주의 상징이 되었다.  

출처 : blog.czajkus.com

19세기 과학 혁신은 맥주발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덴마크 칼스버그 양조장의 의뢰로 1883년 과학자 에밀 한센(Emil Christian Hansen)은 하면발효 효모를 분리 배양하는 데 성공한다. 에밀 한센이 없었다면 황금빛의 투명한 라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누구나 마실 수 있는 맥주의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한 라거는 하면발효 맥주의 대표적인 맥주이다. 하면발효 맥주는 저온에서 장기간 저장할 수 있는데 여기서 저장(lagern)한다는 뜻의 독일어를 써서 라거 맥주라 부르게 되었다. 특별한 미생물 통제 수단이 없었던 당시에 하면발효는 잡균이나 유해 효모로 인한 술의 산패를 방지할 수 있어 맥주의 품질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었다. 냉각장치가 없었던 시절이라 자연 냉각에 의존해야 했으므로 당시 바이에른 지방에서는 맥주 양조 기간을 9월 29일부터 이듬해 4월 23일까지로 엄격히 정해 놓기도 하였다.

 

라거 맥주는 산패를 막고 상큼한 맛의 맥주를 생산하는 장점이 있었지만, 거대한 단열 저장고 마련이 필수였고, 1,000L의 맥주를 제조하려면 1,000kg의 얼음이 필요했다. 이러한 시설 구축을 위해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다. 1843년 카를 폰 린데(Carl von Linde)가 냉매로 암모니아를 사용한 냉동기를 발명한 것은 시대의 한 획을 그은 기술혁신이었다. 냉동기의 발명으로 계절에 상관없이 아무 때나 하면발효 맥주를 제조할 수 있었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라거 세계화의 핵심 요소였다.

 

라거의 전성시대 >>>  

20세기는 라거의 시대이다. 맑고 단순하며 합리적인 라거의 미학은 모던 라이프 스타일과 일치한다. 기술, 과학, 자본의 융합은 라거의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했다. 소품종 대량생산은 산업사회의 미덕이다. 인류의 맥주문화는 라거로 통합되었다. 라거의 대량 생산을 위한 기술과 과학은 더욱 발전하며 맥주자본은 더욱 거대해진다. 2016년 기준, 전 세계 생산 맥주의 90%는 라거이며 전 세계 맥주 생산은 상상할 수 없이 거대한 5개 공룡 맥주자본이 독점하고 있다.

출처 : visualcapitalist.com

수많은 맥주 브랜드를 거느리고 있는 거대한 맥주자본들. 2015년까지 세계 맥주시장은 6개의 공룡자본들, 즉 AB InBev, SAB Miller, MolsonCoors, Heineken, Diageo, Carlsberg가 장악했다. 2016년 AB InBev, SAB Miller의 합병으로 이제는 5개의 공룡자본들이 세계 맥주시장을 독점하고 있다.

권력은 가끔 술과 담배처럼 특별한 통제와 관리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상품의 법률적 독점을 허용한다. 중세 유럽 수도원의 맥주와 중세 영국 수도원의 ‘구르트’는 전매(專賣) 방식의 독점이다. 그러나 자본에 의한 경제적 독점은 보다 더 불가피한 체제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맥주산업에 진입해 세계 맥주시장을 독점하는 ‘AB 인베브’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그와 동등한 거대 자본과 기술력을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자유경쟁이라는 자본주의 경제 구조 속에서 ‘AB 인베브’는 이윤 추구에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시장을 장악했고 결과적으로 맥주시장을 독점한다. 물론 자본주의 경제학 속에서 이런 독점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생존은 기업의 본능이며 더 많은 이윤을 위해서는 최대한 시장을 독점해야 한다. 그렇지 못한 무능한 기업은 도태되는 메커니즘이 자유경쟁 구조이다. 그러나 그것이 어디서 기인한 것이든, 의도가 어떻든 간에 독점은 저항을 불러일으킨다.

출처 : bsic.it

맥주와 인류의 역사는 함께한다. 맥주는 인류 문명과 함께한 ‘먹거리’로서의 문화다. 문화는 완벽하게 상품화되거나 독점될 수 없다.

이러한 저항을 수렴하고 부작용을 완화하기 위해 대부분의 국가는 공정거래법(公正去來法)이나 독점금지법(獨占禁止法) 등의 법적 조치를 취한다. 그러나 기업의 속성은 이런 종류의 법으로 충분히 통제되지 않는다. 1978년 미국 지미 카터 대통령은 ‘홈브로잉’을 허용하는 ‘H.R. 1337’법안에 서명한다. 이 서명은 집에서 맥주를 빚어 마셔도 법적으로 아무 문제 없는 ‘홈브로잉’의 해방을 넘어서는 계기를 만든다. 독점에 맞서는 저항이 시작된다. 라거와 에일의 싸움이 시작된다. 이로써 21세기 크래프트 맥주 혁명의 시작이 예고된 것이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처럼 공룡과 개미의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출처 : sharonspringsresort.com

뉴욕 쿠퍼스타운(cooperstown)의 개미 양조장 양조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