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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_ 맥주의 탄생에서 맥주순수령까지

이야기의 시작 >>>  

인류 문명의 발상지인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 출발해 유럽으로 전파된 맥주는 이후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술이 되었다. 현재, 맥주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양조되고 소비된다. 맥주는 단순히 시원한 마실 거리거나 취하려고 마시는 ‘술’이 아니다. 맥주는 인류의 삶을 반영하고 있는 곡주(穀酒)이다. 맥주는 인류의 먹거리인 곡식(穀食)으로 빚는다. 곡식은 자연에서 채취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 농경활동의 결과물이다. 자연적으로 혹은 우연히 탄생되지 않은 맥주는 인류문명의 결과이자 역사인 것이다.

 

맥주역사의 긴 여정을 끝낸 21세기, ‘크래프트’ 맥주가 등장한다. 크래프트 맥주란 무엇인가? 다양한 ‘질문’과 ‘답’들이 쏟아지고 만들어진다. 물론 크래프트 맥주의 문화적 정체, 경제적 효과, 사회적 의미와 그리고 그것을 관통하는 ‘시대정신’에 대한 규정은 아직 이르다.

출처 : indie88.com

캐나다 온타리오(ontario)의 작은 마을인 해밀톤(hamilton)의 크래프트 맥주. 작은(small) 규모의 양조장에서 특정 자본의 간섭 없이(independent) 다양하고 전통적인 맥주(traditional)를 실험적으로 만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래프트 맥주란 무엇인가?’에 대해 미국 양조협회(Brewer’s Association)는 ‘작고(small) 독립적이며(independent) 그리고 전통적인(traditional) 맥주 혹은 양조방식’이라고 답한다. 편리하고 정량적인 ‘정의’지만

유효한 측면이 있다. ‘크래프트 맥주란 무엇인가?’ 이 질문의 답은 인류문명과 역사가 그렇듯 다층적이고 중층적이다. 그 ‘답’의 한 갈래를 맥주의 역사를 통해 살펴보자.

농업의 시작, 맥주의 시작 >>>  

인류학자들은 인류 최초의 술은 벌꿀로 만든 미드(mead)나 과실주(wine)라고 말한다. 인간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모두 우연히 자연적으로 발효된 술이다. 맥주의 역사는 인간이 곡물을 이용해 술을 빚는 기술을 터득하면서 시작된다. 곡물로 빚어지는 맥주는 인류가 정착하여 농경활동을 시작함으로써 가능했다. 인류 4대 문명의 발상지 중 하나인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맥주가 시작된 이유이다.

출처 : skuola.net

메소포타미아의 티그리스(tigris)강과 유프라테스(euhrates)강이 범람하면서 쌓인 진흙과 모래 퇴적물들은 곡물이 자라기에 풍부한 영양분을 제공하였고, 이 비옥한 땅은 농사를 짓기에 이상적이었다. 기원전 3,000년 전 곡주인 맥주 탄생의 환경이 구축된 것이다. 

메소포타미아는 기원전 3,000년경에 수메르(sumer)인이 세운 도시국가이다. 메소포타미아는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사이의 남쪽에 도시 국가를 건설하고 문자와 청동기를 사용했던 인류문명의 발상지이다. 메소포타미아에서는 홍수에 대비해 둑을 쌓고 저수지를 만들어 농사를 지었다. 이에 따라 여러 도시 국가들이 건설되었고,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는 상업도 발달하였다.

출처 : bier.wanek.de

루마니아 크래프트 맥주 시카루 IPA. 인류 최초의 맥주 ‘시카루’의 오마주이다.

시카루(sikaru)는 수메르인들이 만든 인류 최초의 맥주이다. 메소포타미아의 작은 도시국가에서는 노동의 대가로 시카루를 지급받았으며 시카루로 세금을 납부하기도 하였다. 수메르의 문화는 세계 최고의 문명으로서 오리엔트 역사상 많은 공적을 남겼다. 설형문자(楔形文字)를 발명하여 고대 오리엔트에서 널리 사용하였고 12진법과 60진법을 사용했다. ‘수메르법’이라는 법전도 편찬하였으며 다양한 문학, 신화, 종교에 관한 책도 전해진다. 노아의 방주의 원형인 홍수전설을 담고 있는 ‘길가메시서사시’도 수메르인들의 창작품인 것이다. 수메르인들의 맥주인 ‘시카루’는 인류문명의 시작을 예고한 것이다.

출처 : it.wikipedia.org

이집트의 와제트 호테프(wadjet hotep, BC 2150-2050) 무덤에서 발견된 빵 공장과 맥주양조장을 묘사한 공예품. 이집트에서 빵과 맥주는 같은 곳에서 만들어졌다.

또 다른 문명의 발상지 이집트에서도 맥주는 일상적이었다. 고대 이집트에서 맥주는 노예, 서민들뿐만 아니라 귀족들도 마셔 계층 구분 없이 마시던 술이다. 피라미드 건설에 동원된 노동자들에게 임금으로 맥주와 마늘을 배급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으며, 풍부한 영양분 때문에 식사 용도로도 쓰여 액체 빵이란 의미의 헤크(Hek)로 불리기도 하였다. 당시 맥주는 일과 놀이를 이어 주는 매개체였으며 자유, 평등, 평화, 풍요 등 이집트 문명의 상징이었다.  

 

맥주라는 ‘말’의 갈래 >>>  

맥주는 민족과 지역에 따라 비어(beer), 비라(birra), 세르베사(cerveza), 피보(pivo), 알루스(alus), 에일(ale), 맥주(麥酒) 등 다르게 불린다. 비어(beer)는 라틴어의 ‘마시다’라는 뜻의 비베레(bibere)에서 유래했다는 주장과 ‘곡식’을 의미하는 고대 게르어인 베레(bere)에서 유래되었다는 주장이 있다. 이후 베레와 비베레는 슬라브족으로 전파되었으며, 프랑스의 비에르(biere), 이탈리의 비르라(birra), 독일의 비어(bier)가 되었다.

출처 : briess.com

맥주의 어원이기도 한 '보리'로 만든 다양한 색의 몰트(malt). 맥아(麥芽), 엿기름으로도 불린다. 보리에 싹이 나게 한 다음에 말린 것으로 맥주의 색과 맛을 낸다. 엿이나 식혜를 만드는 데 쓰이기도 한다. 

맥주를 세르베사(cerveza)라고 부르는 지역도 있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곡물의 여신 케레스(Ceres)의 이름을 맥주에 붙인 것이다. 세레비지에(cervisiae)나 세레비사스(cervisas)는 갈리아어나 라틴어에서 유래되어 스페인에서는 세르베사(cervesa), 포르투갈에서는 세르베자(cereja), 멕시코, 칠레에서는 세르베자(cerveza)로 불렸다. 러시아와 체코 등에서는 맥주를 피보(pivo)라고 한다. 이는 보리를 뜻하는 고어로 추정되는데 덴마크에서는 올레트(ollet), 핀란드에서는 오루트(olut), 리투아니아에서는 알루스(alus)라 부르는 명칭 역시 그 옛날 곡물로 만든 술을 일컫는 에일(ale)과 연관되어 있다.

 

야만의 술 맥주  >>>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를 떠나 그리스와 로마에 도착한 맥주는 그리 환대 받지 못했다.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맥주보다 포도주가 더 좋은 술로 대접받았다.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Hērodotos, BC 484-425)는 “이집트인이 맥주를 마시는 이유는 이집트에는 포도가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했고 그리스 작가 아이스킬로스(Aeschylos, BC 525-456)는 이집트 사람들을 두고 “보리로 만든 메트(met)나 마시는 야만인”이라 비웃기도 했다.

출처 : boundless.co.uk

로마에서 맥주는 야만과 가난의 상징이다. 로마인들은 와인을 높은 계급과 문명인의 상징으로 생각했다. 이런 편견의 흔적은 지금까지도 서구문화에 내재되어 있다.   

물론 포도주의 향과 맛 그리고 높은 알코올 함량은 매력적이다. 그러나 맥주에 대한 편견 속에는 그리스인과 로마인의 민족적 우월감이 숨어 있다. 당시 문명의 중심은 그리스 로마였으며 나머지는 변방이자 야만이었다. 그리스와 로마에서 맥주는 열등한 야만의 술(inferior drink of barbarians)이 된다.  

 

중세 맥주 시대  >>>  

유럽 중세는 맥주의 시대이다. 적은 양의 곡물로도 충분한 양의 술 생산이 가능한 맥주는 영양도 풍부하여 식사 대용으로 마시기에 적합했다.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문명에서처럼 맥주는 마시는 빵이 된다. 중세 유럽 민중에게 맥주는 오염된 식수를 대신하여 마시는 음료이며 고통을 잊게 하는 치료제였다. 당시 맥주는 남녀노소의 음료수가 된다. 특히 포도 재배가 쉽지 않은 독일, 영국, 덴마크, 네덜란드 등의 북유럽을 중심으로 양조되기 시작한다. 술이 아닌 ‘마실 것’이라는 맥주 전통의 시작이다.

출처 : winefolly.com

북위 30°-50°와 남위 20°-40°, 포도생산이 가능한 지역이다. 이 지역을 와인생산이 가능한 와인벨트(wine belt)라고 부른다. 유럽의 와인벨트 북쪽으로 맥주벨트(beer belt)가 형성된다.

유럽 중세 맥주의 품질은 형편없었다. 우리가 즐기는 동시대 현대맥주(modern beer)와는 다른 맛과 향의 맥주였다. 맥주의 품질이 획기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한 것은 중세 유럽 수도원에서 맥주를 빚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사실 수도원과 맥주의 조합은 어색하다. 수도사와 술. 세속적 상상의 조합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수도원과 맥주의 만남은 다음과 같이 설명되곤 한다. “수도원의 맥주는 수도사들이 사순절 기간 동안 단식을 할 때 영양을 공급하는 역할을 했으며 동시에 순례자나 수도원 주변에 살고 있는 지역 주민에게 대접하는 음식의 하나였기 때문이다.” 또한 “의학 기술이 일천했고 영양 보충을 위한 특별한 음식도 변변치 못했기 때문에 흑맥주를 빚어 약으로 영양제로 사용했다.”

출처 : interwd.be
중세 유럽 수도원과 맥주의 만남은 맥주발전의 획기적인 계기였지만 맥주의 생산, 유통, 판매를 특정 집단이 독점한 첫 번째 사례이다. 이후 대량생산 대량소비로 설명되는 산업사회 속에서 자본은 맥주를 독점한다.  

13세기 중반, 시민들은 종교의 맥주 독점에 저항하며 결국 맥주 양조권을 쟁취한다. 이는 1987년 미국의 지미 카터 대통령이 홈브로잉을 합법화한 사건과도 같다. 자본이 독점하고 있는 심심한 맛의 라거(lager)와 싸우는 크래프트 맥주의 입장(position)과 유사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양조권을 쟁취로 누구나 맥주를 빚어 판매할 수 있게 되었다. 개인들이 앞다투어 맥주산업에 뛰어들고 조합 형태인 길드(guild)가 만들어진다. 길드 맥주와 수도원 맥주는 치열한 경쟁을 벌였고 보다 다양한 선택이 가능해진 사람들도 만족을 얻었다. 특히 길드가 발달했던 독일의 맥주는 마치 인류 문명이 어느 날 갑자기 꽃피우듯이 급속도로 발전한다. 

맥주 순수령  >>>  

북부독일의 브레멘, 함부르크, 도르트문트, 쾰른, 아인베크 등의 도시는 12 - 15세기경에 한자동맹(hanseatic league)에 가입하고 활발한 무역을 벌였다. 이들이 빚은 고품질의 맥주는 주요 수출품이었다. 북부독일에 비해 남부독일의 맥주는 품질이 떨어졌다. 와인벨트에 있는 남부독일은 북부독일에 비해 와인 문화가 발달했기 때문이다.

반면 북부독일 아인베크 지역의 맥주는 유럽 내에서도 평판이 자자했다. 남부독일의 귀족들은 북부독일의 맥주를 수입해 즐겼다.

출처 : learnlearn.net

한자(Hansa)는 중세 유럽 상인의 조합 명칭이다. 14세기경 ‘독일한자’ 또는 ‘한자동맹’이라는 도시동맹(都市同盟)이 만들어지고 중세 무역에 커다란 역할을 한다. 중세 독일맥주가 한자동맹 루트를 통해 유럽으로 퍼졌다.  

남부독일 바이에른(Bayern)의 귀족들은 맥주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 맥주에 물을 타거나 불량한 재료로 사용하는 양조자의 부정 행위를 근절하고자 했다. 1516년 4월 23일 바이에른 공국의 빌헬름 4세(wilhelm IV)는 맥주순수령(麥酒純粹令)을 반포한다. 맥주를 만들 때 몰트, 홉, 물, 효모 이외의 원료는 사용하지 못하게 했으며, 가격도 제한했다. 그리고 이를 어기는 양조업자에 대해서는 생산한 맥주를 모두 압수하도록 했다. 식품에 관한 법률로는 가장 오래된 것 가운데 하나이다.

출처 : jeffzoet.blogspot.kr

빌헬름 4세(wilhelm IV, 1493∼1550)의 맥주순수령(reinheitsgebot) 반포문. 맥주순수령은 독일 맥주의 일관된 품질유지에 큰 도움이 된 반면 다양한 재료를 활용한 다양한 실험을 원천봉쇄하는 역할을 한다. 맥주순수령은 맥주순혈주의라는 이데올로기가 될 수 있다.

맥주순수령은 바이에른 이외의 지역에 전해졌고, 제1차 세계대전이 벌어지던 1919년을 계기로 독일 공화국 내 모든 지역에서 맥주순수령을 채택하게 되어 독일의 국법이 된다. 현재도 몰트, 홉, 물, 효모 4가지 이외의 재료가 첨가된 맥주는 독일에서는 법적으로 맥주가 아니다.

 

크래프트 맥주의 문화상상이란 맥주의 역사적 전통과 융합한 다양한 맛과 향을 의미한다. 21세기 문화 감수성이란 다원적 문화의 다양함과 혼성문화를 당연한 것으로 만든다. 이에 반해 맥주순수령은 21세기 크래프트 맥주의 감수성과 상상을 제한하는 걸림돌로 여겨질 수 있다. 독일 크래프트 맥주 운동이 맥주순수령이라는 ‘이데올로기’의 해체에 관심을 갖는 이유이다.